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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기억, 기록의 치유

기사승인 2018.04.10  23: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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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식 목사. 배화여자대학교 교목실장

밤늦게 고향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앞서 서른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 아들의 결혼식이 다음날인데, 그 아들의 아비 노릇을 대신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집에 들어와서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오지 않다가, 떠난 친구와 자기와 나와 지냈던 어릴 적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라 스치면서 갑자기 울컥해서 전화를 했노라고. 내가 미처 하지 못하고 있었던 ‘아버지 친구’ 역할을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해온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바로 전하기가 쑥스러워서, 공연히 눙치는 소리를 해댔다. 야, 인간아! 겨우 환갑나이에 벌써 늙은이 티를 내고 주접을 떠는 기여? 이렇게 말해 놓고도, 나도 같은 주접으로 전화통 속에서 친구와 노추(老醜)의 수다를 떨었다.

친구와 나는 아버님끼리도 친구인 그야말로 통가지의(通家之誼)를 나누는 사이다. 그래서 집안의 아픈 사연도 거의 알고 서로 나누었다. 친구의 아버님은 북(北)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의 아픔을, 선부(先父)는 일제 강점기에 삼년이나 징용을 다녀 온 아픔을 안고 살았다. 친구는 열한대 째 외아들이고 나도 외동아들이다. 고구(故舊)가 환갑이 되어 옛 추억을 살려가며 오래 말을 나누다보니, 즐거웠던 순간들보다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더 오래 기억으로 남아 상처가 되고 있었음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추억이 개인의 한 시절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기억은 한 시대 또는 그 이상의 역사(歷史)를 간직한다. 그런데 이 땅에서 이 나이쯤 된 우리들의 추억은 온전히 개인적이거나 정서적이지 못하고 대부분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정치적이며 집단적 기억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른바 역사의 격동기를 지내 오면서 추억과 기억이 분리될 수 없는 역사·정치의 집단적 경험을 겪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감상적인 추억마저도 곧장 시대 역사의 기억으로 소환되고 만다. 그때는 국민교육헌장과 새마을운동의 시대였거나, 유신이었거나, 10·26이었거나, 3김(三金) 시대이었거나 등으로 말이다.

추억의 아픔은 차 한 잔을 나누며 떠드는 수다에 슬쩍 사라지기도 하지만, 기억이 된 상처는 쉽게 아물지 못한다. 특히 기억이 대개 사회의 정치적 이슈와 직접적인 관련성을 갖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전진성,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사실 기억이란 어찌 보면 상당히 일방적인데다가, ‘자의적이고 산만하며, 또한 변덕스럽고 신뢰성이 없음’에도, 이 나라에서 기억은 오히려 국정 또는 국가 기록으로서의 역사보다 더 신뢰를 받고 있는 편이다. 그것이 때로는 개인의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부의 공식적인 국가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신뢰를 받지 못하는 ‘역사의 약화’가 시민들의 기억을 소환해서 ‘기억의 강세’ 현상을 일으켰고, 이 땅에서 기억은 역사의 하중을 그대로 떠안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전진성 교수는 “아직도 모진 역사의 상흔을 치유하지 못한 곳에서 기억은 남편을 잃은 아기엄마와 같은 버거운 역할을 맡고 있다”고 토로한다. 아픈 기억들이 남편조차 곁에서 돌보지 못한 산통을 뚫고 나와 기록이 되고 그래서 역사가 되면 그나마 치유의 길이 엿보인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안정희 작가에게 묻는다. 과연 ‘기록이 상처를 위로’할 수 있을까? ‘상처라는 패인 홈을 기록으로 채운다’고 말한 이영남 교수의 권면처럼, ‘조선왕조실록’을 만든 사관이 기록하지 못했던, 백성의 목소리와 시민의 이야기를 기록해내는 새로운 종류의 아키비스트(기록물관리전문요원)가 등장해서 ‘시민 아카이브(archive)’라는 새로운 기록들이 시민들이 일상에서 다친 상처들을 치유하는 ‘기록의 연대(連帶)’가 되길 기대해 본다.

하여, 나는 이 4월에 묻는다. 역사가 되어있는 1960년 4월 19일의 기록이 후대에 어떤 기억으로 남겨져야 하는지를. 법정 공휴일로조차 지정되지 않아서, 그해 사월에 이 땅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 기록으로부터 그날의 기억을 제대로 이어 받지 못하고 있는 청춘들,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되는 기억보다는 당장 눈앞의 아픔인 실업(失業)과 등록금이 상처의 기억으로 남기 시작하는 젊은 세대에게 ‘사일구’는 과연 어떤 기억으로 전해져야 하는지 말이다.

기독교타임즈 21c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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