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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에서 배우자

기사승인 2018.03.08  17: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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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세웅 목사, 전 중부연회 감독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 4:1-6

 

무지개는 노아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언약의 증거로 세워 주신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 놀라운 교훈은 하나의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깔을 모아서 만드셨다는 것이다.

일반 사회단체는 나름대로 어떤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나 고향이나 학교 또는 직업이나 취미가 같은 사람들 그리고 연령계층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다. 그래도 하나 되지 못하고 싸우고 갈라진다.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들끼리도 싸우고 헤어져 남남이 된다.

교회는 사회단체와 달리 하나서부터 열까지 다 다른 사람들이 모인 단체다. 고향, 학교, 직업, 취미, 사상이 다 다르고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리고 사회단체와 달리 하나를 만들기 위한 어떤 특별한 규정이나 법적인 구속력도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싸우기로 말하면 매일 싸워야 하고 재판정을 안방 드나들 듯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갈라지지도 못하면 계속 싸우다 다 같이 망해야하니 일반 사회단체보다 더 무서운 면이 있다. 교회의 싸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에서와 야곱의 싸움, 제자들끼리 누가 크냐, 누가 더 높으냐 하는 문제로 사사건건 싸우다 마지막에는 그 문제를 예수에게까지 가지고 왔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포기하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싸우며 판결을 바라는 제자들에게 이론이 아니라 시청각 교육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세워놓고 가르치셨다. 어른들처럼 너무 똑똑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어린아이 같아야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그 아이는 자라서 훌륭한 교회 봉사자가 되었고 위대한 저술가가 되었으며 마지막 순교자가 된 안디옥의 익나티우스였다는 전설이 있다. 제자들의 모습은 겉으로는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므로 거룩하고 경건하게 보였지만 회칠한 무덤이었다. 속에는 시체가 썩고 있었다. 겉으로는 찬송하며 기도하지만 내적으로는 휴화산과 같아서 언제 활화산으로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였다.
만일 교회가 똑같은 사람들끼리만 모인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니다. 일반 사회단체로 전락하는 것이다. 교회의 신비는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 하나되는 것이다. 무지개를 보자. 똑같은 색깔만 모아 놓으면 무지개가 될 수 없다. 나와 색깔이 다르다고 다 지워버리면 아름다운 무지개를 그릴 수 없고 신비스러운 조화를 만들 수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 모이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정치 집단이나 노동조합, 잘못하면 깡패 집단으로 변질이 될 수도 있다. 서로 다르지만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 가까이 당신의 몸을 보라. 서로 더 다른 지체들이 모여 하나의 몸을 이루지 않는가? 우선 손을 보자 다섯 손가락이 다 모양이 다르고 크기가 다르고 기능이 다 다르면서도 하나가 되지 않는가? 그러므로 손은 자기 역할을 감당하고 온몸을 위해 크게 공헌을 하는 것이다. 다섯 손가락이 서로 다르다고 싸운다면 손은 마비가 되고 결국 온몸을 시체로 만들고 말 것이다.
바울은 교회를 설명 할 때에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면서 서로 다른 지체들이 모여 하나의 몸을 이루어 간다고 했다. 물론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기적이나 신비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셨다. 성령의 역사를 전제하면서 다르면서 하나 되는 비결과 의미를 생각해보자. 첫째 남을 보기 전에 먼저 나를 보자. 육신의 눈은 먼저 나름 보지만 영안은 항상 먼저 자기 자신을 본다. 남의 눈 속에 티를 보지 말고 내 눈 속에 들보를 보자 성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기 전에 먼저 나를 돌아보고 자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둘째 이 세상에서는 나 혼자 백점짜리 인생을 만들 수 없다. 나의 약점이나 부족한 면은 절대로 내 힘이나 지혜로 고칠 수 없고 채울 수 없다. 나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나의 약점이나 부족한 면은 절대로 내 힘이나 지혜로 고칠 수 없고 채울 수 없다. 나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나의 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이웃이 필요하며 특별히 나와 다른 이웃이 있어야 한다. 셋째 똑같은 사람들끼리 모이면 현상유지에서 퇴보하게 되고 결국 공멸하게 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사람끼리 모이면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상승효과를 이루며 더욱 풍성한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넷째 이웃을 또 하나의 거추장스러운 걸림돌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 속담에 ‘이웃은 사촌’이라는 말이 있고 오끼나와에서 만난 어느 일본 목사님은 첫 인사에서 “우리는 만나면 형제입니다”라고 했다. 결국 이웃은 또 하나의 나 인 것이다. 이웃을 미워하고 원수로 생각하면서 그 이웃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피차에 얼마나 큰 불행이며 그들이 모인 공동체는 결국 합장하는 무덤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가 된다는 것은 가정이나 사회단체 그리고 국가나 국제 사회의 평화와 발전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교회는 다르면서도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교회의 신비와 조화를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
무지개를 보고 배우자.

기독교타임즈 21c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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