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setNet1_2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다시 찾은 나의 십자가

기사승인 2018.03.08  13:40:45

공유
default_news_ad2

- 김병삼 목사, 만나교회

필자는 성도들에게 신앙의 원리에 대해 설명할 때 종종 ‘불편함’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육에 속한 우리가 영의 것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마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으면 불편한 것처럼 말이다.

유대인의 지도자였던 니고데모가 떠오른다. 그는 한밤 중에 예수님을 찾아왔고,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3:3,6) 니고데모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육에 속한 지식으로 영의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세상 속에서 주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불편하기만 하다. 그런데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신앙은 나의 영달을 위한 방편이 아니라 자격 없는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는 사실이다.

지난해 필자는 수난주간에 성도들과 함께 제주도 성지순례를 했다. 제주 땅을 밟으며 들었던 생각이 있다. 제주 땅도 하나님께서 ‘이처럼’ 사랑하셨던 땅이고, ‘누구든지’ 제외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사랑의 흔적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다고 말이다. 제주도는 참 아름다운 섬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옛 문헌에 따르면 제주도는 마치 죽을 곳에 들어가는 것처럼 생각하여 모두 피하고, 섬사람들은 빈손으로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육지에 나가기를 마치 천국에 가는 것처럼 생각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제주는 조선왕조 5백년간 삼백여명이 귀향살이를 한 한맺힌 유배지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제주의 아픈 역사는 4·3 사건이다. 정부의 진상 보고서에 의하면 이 사건의 피해자는 25,000-30,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제주도의 교회에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예배한다. 그들은 4·3사건에 대해서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로에게 아픔과 상처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연이 아름다워서 더욱 슬픈 땅 제주를 보면서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땅 제주에 십자가의 사랑이 회복되고 전파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아름답지만 그래서 더 슬픈 푸른 제주를 보면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가슴저린 사랑이 보이는 듯 했다.

제주 땅을 보면서 느끼는 또 하나의 감상이 있다. 이렇게 우상이 많고 피를 많이 흘린 이곳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땅을 향한 하나님의 손길은 끊임없이 있어왔다. 단지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그 사랑을 소유하지 못한 채 육에 속하여 일그러진 모습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찬양이 있다.

‘십자가 그 사랑’. 이 찬양 속에는 우리의 영적 상태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하는 말이 있다. ‘돌 같은 내 마음’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세상을 살다보니, 각박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내 마음이 굳어져서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도 거짓말 같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또한 이제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도 참 힘들어 보인다. 아마도 내 마음이 너무 굳어 있어서는 아닐까. 바로 이런 세상 가운데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 필자는 성도들에게 ‘다시 찾은 나의 십자가’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 한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이 있었다. 사랑한다는 것이 참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기는 하지만, 사랑에는 늘 누군가의 희생과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고난과 멸시와 고통을 당하셨고, 사도바울과 스데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위해 자신의 인생 전체를 희생했던 것처럼 말이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고,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다. 그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 한없이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에게 동일한 십자가 사랑을 요청하실 때, 그 부르심이 불편하기만 한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 주님은 당신의 제자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단호하게 제시하신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리고 사순절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너의 욕심과 너의 생각, 그리고 너의 계획을 한번 내려놓을 수 없겠니? 그리고 단지 내가 너를 사랑했던 것처럼, 그 사랑 때문에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없겠니?”

기독교타임즈 21cpress@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일반기사

문화

1 2 3 4
item53

교육

1 2 3 4
item54

미션

1 2 3 4
item55

오피니언

More Section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