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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의 제국과의 싸움

기사승인 2018.01.24  17: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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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정호 목사(신반포교회, 연세대학교 전 객원교수)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싸움은 ‘당연의 제국’과의 싸움이다.” 시인 김승희의 말이다. 경험을 특권으로 여기는 이들과의 씨름은 쉽지 않다. 변화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해 왔던 일을, 단지 오랫동안 그 일을 해 왔다는 이유로 ‘전통’으로 여기는 한 ‘당연의 제국’은 무너지지 않는다. 소설가 현길언은 이를 ‘관행이라는 폭군의 지배’라고 표현했다. “관행이라는 폭군의 지배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모르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관행이 지배하는 도시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입고 있던 옷을 벗어버려야 한다. 양심의 옷, 인격의 옷, 심지어 신앙의 옷마저 다 벗어버린 후 ‘관행’이라는 가면을 써야 비로소 이 도시에서 살아갈 ‘자격’이 주어진다. 거기에서 그들은 서로의 벌거벗은 몸을 본다. 그러나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이 똑같아졌기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부끄러움이 차지해야 할 자리를 안도감과 유대감이 차지해버렸기 때문이다.

교회 밖 청년들에게 교회는 ‘당연의 제국’으로 비춰지는 듯하다. 각종 기관과 시민단체에서 발표하는 종교와 성직자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개신교는 청년층으로 갈수록 비호감도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이들의 삶이, 성서가 말하는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로의 전환이 아니라, 당연의 가면을 쓴 채 부끄러움을 잊은 행태로 비춰진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교회 공동체가 주는 안도감과 유대감은, 공동체성이 위협당하는 우리시대 개인과 사회를 성숙시키는 밑거름이다. 그러나 교회가 이런 가치들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크고 작은 ‘당연의 지배’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불의로 치닫는 길을 활짝 열어두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국교회를 위협하는 이단과 사이비 종파의 대부분은 거기에 소속된 이들에게 강한 유대감과 안도감을 제공하는 대가로 그들만의 ‘당연의 제국’과 ‘관행이라는 폭군의 지배’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만약 교회라 이름 붙인 공동체가 그 모든 활동에 있어 성서가 말하는 복음적 가치를 최우선에 두지 않고, 정치적 편견이나 개인의 욕망, 집단이 공유하는 경험이나 추억 따위를 특권으로 내세우는 데 길들여져 있다면, 그 공동체는 이미 타락했거나 몰락을 앞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건강한 교회는 성서의 가르침 안에서 ‘정통교리’(orthodoxy)와 ‘정통실천’(orthopraxy)이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조화는 거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복음의 정신에 굳게 서서 ‘당연의 제국과의 싸움’을 지속하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주어지는 ‘의의 면류관’이다.  

교회 밖 청년들을 교회 안으로 불러오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시대에 더욱 절박한 과제는, 교회 안 청년들을 교회 밖으로 ‘밀어내지’ 않는 일이다. 그들은 ‘당연의 제국과의 싸움’을 포기한 교회, ‘관행이라는 폭군의 지배’를 받아들인 목회자와 평신도들의 민낯을 대하며 흔들린다. 청년들이 교회에서 배워야 할 것은 ‘당연의 제국’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아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당연의 제국’에서도 부끄러움을 잊지 않고 사는 법을 가르쳐줄 뿐이다.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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