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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과의 이별 묵상

기사승인 2018.01.10  16: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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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연 목사(산마루교회)

   
▲ 이주연 목사

12년간 함께 살았던 아이 진달래가 지난달 30일 아침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 가족은 진도에서 온 암컷 진돗개에게 진달래라고 이름을 붙여 줬고, 그 아이를 달래라고 불렀다. 달래는 일주일 정도를 앓았다. 그리고 마지막 날 아침엔,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실컷 먹고 밖으로 나가 자기가 늘 오르던 바위에 올라 밖을 살펴보더니 돌아와 눈을 감았다. 달래는 진도에서 태어난 최우수자견이기도 했다. 최우수자견은 수백 마리 중에서 몇 마리 태어난다는 귀한 녀석이기도 하다. 달래는 어려서 그렇게 총명하고 재롱을 부리더니, 성견이 돼서는 여섯 마리 새끼를 낳아 그렇게 잘 기르고, 훈련을 시켰다. 그리고 늘 자기 몸도 자기가 깨끗이 잘 관리하고, 외부인과 내부인을 잘 분별하며 집도 지켰다. 그리고 낮이나 밤이나, 더우나 추우나, 문 앞까지 나와서 그토록 나를 반기고 때론 배웅했다. 혹 야단을 치면 머리를 낮추고 실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 미안하게 만들었다. 달래를 보내며, 미물일지라도 내가 사랑한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고 자신을 바쳐 따랐다는 것이 한 생명에 이토록 아프고 빚진 마음을 가지게 할 줄 몰랐다. 사람 아닌 한 생명과의 만남이 이토록 슬픔과 아픔을 남길 줄이야.

이 아픔 속에서 스스로 묻게 된다. 한 마리의 개도 자신의 주인에게 이토록 충성하고 순종하는데 나는 창조주 하나님께 어떤 태도로 살아왔는가? 인간은 동물에게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배반한 죄이다. 동물은 본능만이 있을 뿐 죄는 없는 것이기에, 그들은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잡아먹지 않으나, 인간은 무수히 인간을 죽이고 원한을 맺고 살아가는 것인가? 전쟁하고 학살하고 무차별 테러를 자행하는 인간을 보면 인간의 실상은 짐승보다 더 짐승적인 것은 아닐까?

한 번도 반항이 없었고 순종뿐이었던 한 생명을 떠나보내면서 가슴에 남는 한 마디 음성이 있다. “오라, 나는 아직도 사랑에 서툰 생명이로다!” 아울러 큰 깨달음의 기억이 다시 찾아 든다. ‘실로 그 어떤 생명일지라도 미물인 것은 없으며, 살아있는 것이 사태!’라는 젊은 날의 깨달음이 다시 엄습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이 큰일이란 생각에 어찌하나 하던 그 서늘한 깨우침이 다시 고개를 든다. “죽어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지….” 실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은 생명으로서 존귀하게 지으셨다. 그 존귀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에 사랑해야지!

이 한 해, 앞으로의 인생, 이생의 이 숱한 생명들과의 만남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사랑해야지! 지금 사랑해야지! 추억으로 사랑을 더듬는 이는 아쉬움과 여한만을 남기리라! 그러나 어찌 이 생을 다 사랑으로 감당하랴! 그것은 오직 하나의 길! 예수처럼 그렇게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것!

오늘도 춥고 깊은 밤 십자가 아래 제단의 촛불은 시계의 시침 소리를 들으며 말없이 자신의 몸을 녹여 눈물을 흘리며 빛을 발한다. 저것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고 사랑이지!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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