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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이 사라졌다

기사승인 2018.01.10  16: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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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정완 목사 / 꿈이있는교회

하정완 목사

베를린 예술대학의 한병철 교수에 의하면 과거 세상의 구조에서 면역의 대상은 타자성 자체였다. 밖으로부터 오는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했다. 하지만 21세기가 만난 포스트모던 사회의 다원주의 경향은 이같은 태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인터넷 등으로 인한 엄청난 정보의 홍수는 절대성을 상실하게 했고 다양성을 지향하게 만들었다. 어떤 것도 함부로 부정하는 것은 힘들게 됐고 모든 것을 긍정해야만 하는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그때부터 면역 방어의 대상으로 타자성은 의미 없게 됐다.

이처럼 방어할 대상으로 타자성에 대한 경계가 사라지자 이질성은 무의미하게 됐고 더 이상 항체는 필요하지 않게 됐다. 예를 들어 그동안 면역 대상으로 보았던 동성애, 자살 등 주의할만 한 사회적 현상에서 시작해 이단, 교회의 세속화, 다른 도그마, 세속적 성공주의까지 면역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할만한 것으로 혹은 받아들여도 되는 것으로 이해됐다. 과거 죄와 불법으로 여겼던 것들을 더 이상 죄와 이단으로 규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동안 교회가 견지해왔던 분리와 타자성, 특히 이단이나 세속화, 물질, 세상은 교회가 추구할 면역의 대상이 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것들은 면역의 대상이 아니라 긍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면역대상으로서 타자성의 소멸이 온 것이다. 심지어 낯선 것으로서 즐기는 대상이거나 호기심어린 것이 되었다. 그때부터 매우 급속도로 면역 체계로서 자기 방어의 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실은 그럴수록 세상의 추구와는 분명한 구분과 분리가 있는 독자적 거룩을 교회는 견지해야 하고 교회의 근거인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의 방법을 좇아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진화론적 세계관을 좇는 목회를 택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세상의 중심인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하나님이 명령한 것은 구별됨 곧 거룩이었다. 그런데 가나안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즐김으로 이스라엘의 영성이 파괴된 것처럼 오늘 교회들 역시 구별과 거룩이 아니라 세상의 방법을 좇으므로 외형적 성장은 가져왔는지 모르지만 거룩의 영성이 파괴됐고 성경은 왜곡된 번영신학의 교과서로 변질돼 해석됐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세상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세상은 자신과 닮은 교회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거룩한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세금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미 교회가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하긴 수없이 드러나는 목회자들의 성적인 타락과 감투와 물질과 성공을 추구하는 번영신학의 번성과 교회를 자신의 유산처럼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세습과 권력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욕망을 보면서 할 말이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거룩이 사라졌다. 목사들이 목사답지 않고 교회가 교회답지 않은 비극을 만났다. 수없는 구호와 외침이 난무하지만 성경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고 예수가 걸은 길은 부정됐다. 이제 피할 길이 없다. 더 이상 늦기 전에 지금 멈추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야 하는 시대를 만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기독교타임즈 kmctimes@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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