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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와 바흐의 음악 이야기 ‘음악은 하나님의 선물’

기사승인 2017.09.13  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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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영철 목사, 영등포중앙교회

   
▲ 성 게오르그 교회(아이제나흐)

“음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순수한 선물이자 은사다. 음악은 악마를 내어쫓으며,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사람들은 이것으로 모든 힘든 일을 잊는다.” 루터는 진한 감수성을 타고났다. 음악에 대한 감성적 꽃망울은 청소년기를 보냈던 아이제나흐(1498년~1501년)에서 터져 나왔다. 타향의 고적했던 시간에 경건한 친척 코타의 집에 머물던 그는 음악과 중세 경건을 듬뿍 익힐 수 있었다.

독일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 행사 중 2012년을 ‘종교개혁과 음악‘이란 주제로 잡았다. 이때 등장한 루터 사진이 바로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루터였다. 오늘날 루터가 현존한다면, 분명 그는 이런 도구들을 맘껏 활용하지 않았을까? 

요한 제바스찬 바흐, 160여 년 차이가 있으나, 아이제나흐 라틴어 학교의 선후배 관계였다. 그는 성 게오르그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여기는 바흐 가문이 130여 년 음악가로 봉직한 곳이다. 그는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을 일편단심 음악이라는 선율로 답습하고자 애썼고 철저하고도 충실한 루터파가 되기를 원했다. 루터를 통해 복음이 제대로 전파됐고 성사들이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에 깊숙이 스며 있는 복음에 대한 열정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여전히 루터 시대에도 교회에서는 단음조의 성가가 불렸고 대체로 ‘그레고리우스 성가’풍의 노래들이 연주되었다. 그러나 바흐의 대위법 도입을 통해 교회 음악의 풍성한 새 장르가 열리게 되었다. 루터의 “내 주는 강한 성이요“이란 곡도 새 옷을 입게 된 연유이다.

“모든 음악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며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어야 한다. 만일 자신의 음악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한다면, 그 음악이란 단지 악마가 내는 소음이요 굉음과도 같다.” 이런 바흐의 음악 지론이 교회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자명하다. 소리를 낸다고 다 음악이 아니며, 하나님의 이름을 거명한다고, 다 경건을 담은 음악이 될 수 없는 까닭이다.

루터는 업무로 비텐베르크를 오래 비워야 할 때가 많았다. 내려갈 때 꼭 거친 곳이 켐베르크였는데, 긴 마차 여정에 대한 불평을 자주 늘어놓곤 하였다. 필자도 먼 여정 땐 필히 90% 주변 소음을 잡는 노이즈 캔슬링(잡음 제거)이라는 최신 기술이 들어간 헤드폰을 지참한다. 루터 또한 이런 제품을 통해 음악의 깊이와 넓이를 더하지 않았을까 확신한다.

실로 루터가 끼친 영향은 지대하지만, ‘사랑받지 못한 형제’로 불리는 극과격파 개혁자 토마스 뮌처 또한 음악 애호가였고 심지어 루터보다 먼저 독일어 예배와 노래를 적극 도입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철학자 니체 또한 음악 애호가였다는 사실도 이런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80여 년간 망각에 묻혔던 바흐의 음악을 세상에 다시 빛을 발하게 한 사람이 바로 멘델스존이다. 그가 베를린 대학에서 헤겔의 철학을 청강했고 신학자 슐라이에르마허가 그의 집을 정기 방문했다는 사실은 음악 애호가가 가져야 할 다양한 폭을 엿보게 한다. 

오늘날 바흐나 여러 음악가의 음악을 인터넷 라디오나 네트워크 리시버를 통해 1년 365일 전 세계 어디서나 고음질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루터나 바흐, 다 같이 흐뭇해할 일이 아닐까 싶다.

기독교타임즈 webmaster@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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