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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촛불’ 30년 뛰어넘은 세대 간 조우

기사승인 2017.06.13  10:4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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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0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
“미완의 6월 항쟁 완성시키라는 국민의 명령"

지난 10일 서울광장에서 '제30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기념식은 사상 최초로 정부와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가운데 5000여 명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30년 만 서울광장 가득 채운 시민들의 함성

1987년 6월, 군사 정권에 맞서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며 민주화를 열망했던 시민들의 함성이 30년 만에 다시 한 번 서울시청 앞 광장에 울려 퍼졌다.

 

‘제30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린 지난 10일 서울광장은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여야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정·관계 인사를 비롯해 민주화운동 관계자들과 유가족 및 시민 등 5000여 명이 참석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서울광장은 1987년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이 열렸을 당시 약 100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했던 장소이지만, 6월 항쟁 기념식이 서울광장에서 치러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행사는 특별히 정부와 시민사회가 처음으로 함께 개최해 의미를 더했다. 정부는 20주년이었던 지난 2007년, 대통령이 직접 행사에 참석하는 등 6·10 항쟁 기념행사를 공식화 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주관한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별도로 행사를 열어왔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6월 항쟁의 정신 위에 서 있다. 임기 내내 저 문재인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가진 국민의 한 사람임을 명심하겠다”며 “촛불은 한 세대에 걸쳐 성장한 6월 항쟁이 당당하게 피운 꽃이었습니다. 6월의 시민은 독재를 무너뜨렸고 촛불시민은 민주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의제를 제시했다”고 전했다. 이어 6월 항쟁의 중심은 특정 계층, 특정 지역이 아니었음을 지적하고, “독재에 맞섰던 87년의 청년이 2017년의 아버지가 되어 광장을 지키고, 도시락을 건넸던 87년의 여고생이 2017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촛불을 든 것처럼,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현 정부가 6·10민주항쟁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기억과 다짐’을 주제로 열린 행사 현장에서는 6월 항쟁 과정에서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했던 아버지와 2017년 촛불을 들었던 딸이 무대에 올라 서로 편지를 주고받아 눈길을 끌었다. 먼저 아버지 김판곤 씨가 “아빠는 너희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와 줘서 참으로 고맙다. 희미해진 엄마·아빠의 눈을 다시 밝혀줘서 너무나 고맙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용기를 이제 다시 갖게 됐다”고 말하자, 딸 김래은 양은 “30년 전 아빠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왜 다른 이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지, 아픔을 나눠야 하는지. 우리들의 꿈이 모두 같지는 않겠지만 보듬는 세상을 만들려면 서로 손잡고 지켜야 한다. 아름다운 꿈에서 우리 함께 살자”고 응답했다.

행사는 모든 참석자들이 자리에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맞잡고 6월 항쟁 당시 불렀던 민중가요 ‘광야에서’를 제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1987년 6월, 전국서 민주화 이끈 한국교회

기념식에 앞서 서울시청 건너편에 위치한 성공회대성당에서는 6월 항쟁에 참여했던 민주 인사들이 30주년을 기념해 당시의 타종을 재연했다. 성공회대성당은 6·10민주항쟁의 진원지 중 한 곳으로 1987년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발족식이 열렸던 장소이다. 이날 타종식에는 당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김영주 교회협 총무와 성공회 민주청년회장으로 국본 지원을 담당했던 유시경 신부(성공회 교무원장), 성남 지역 6월 항쟁을 이끌었던 이해학 목사(주민교회 원로) 등 교계 인사들도 자리했다. 이들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모든 영령들에게 바치는 추도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국민주권 정부의 출범과, 온 세계가 자랑할 민주주의의 새 역사를 축하하며 기쁨 △이 땅에 민주와 평화, 정의와 생명의 역사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굳은 결의로 약속과 다짐의 의미를 담아 총 30차례 종을 쳤다.

이처럼 6월 항쟁 당시 한국교회는 군부 독재로부터 억압 받던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전국 각지에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국본 창립대회가 열렸던 향린교회와 6·10민주항쟁의 진원지인 성공회대성당을 비롯해, 한국기독교회관을 중심으로 한 종로 5가 일대는 6월 항쟁 당시 거점으로 활용됐다.

전국 감리교회 역시 6월 항쟁의 중심지요, 기폭제 역할을 감당했다. 대전제일교회(담임 이성호 목사)는 대전 지역 거점지로 목회자들의 단식농성과 신도들의 지지기도회 등을 통해 항쟁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고, 대전·충남 지역 사령탑 역할을 했던 대전충남국민운동본부는 빈들교회(담임 남재영 목사) 지하공간에 사무실을 꾸렸다. 수원은 1987년 6월 18일 동수원교회(담임 오봉근 목사)에서 열린 최루탄 추방 예배를 시작으로 수원지역 거리항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6월 21일 오후 5시 종교교회에서는 감리회 성도 및 학생 2000여 명이 모여 ‘민주화를 위한 구국기도회’를 가진 뒤, 기도회에 참석한 800여 명이 교회 밖에서 1시간 동안 시위를 벌인 기록도 남아있다. 또 감독회장을 역임한 故 김지길 감독은 6월 항쟁 당시 교회협 회장을 맡아 한국교회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도록 독려한 인물로 평가 받는다.

30년 전, 불의한 권력에 맞서 사회적 약자를 품었던 한국교회와 감리회는 당시 사회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받았다. 이것이야말로 ‘신뢰 속에 부흥하는 감리교회’를 소망하는 오늘의 감리회가 지향해야 할 지점이라는 지적이다.

정원희 기자 whjung@kmctimes.com

<저작권자 © 기독교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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